평소 기독교적 치유 글쓰기에 천착해왔던 시인 이경애의 네 번째 시선(詩選), [내 안에 당신이 있습니다]가 나왔다. [사랑의 옷을 입은 본능](1999, 교단문학), [나는 아직 다 보지 못하였습니다](2001, 교단문학), [이 모든 흐름을 열어 놓고](2002, 문학과 의식)에 이어 근 20년 만에 선보이는 역작이다.

시인의 글 속 치유 에너지가 곳곳에 묻어나는 시집, [내 안에 당신이 있습니다]는 마침 코로나19로 전 인류가 고통을 받는 시기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 불안과 죽음의 공포, 경제봉쇄와 강화된 방역조치로 인한 생활방식의 변화, 그리고 경제 타격으로 인한 현실적 두려움 속에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 블루(불안, 스트레스, 우울감)를 넘어서 코로나 레드(분노, 화병)와 코로나 블랙(우울증, 절망, 자살)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시집 3부에 수록된 ‘위선이라는 이름짓기’는 이러한 시대 상황의 숨겨진 내막을 냉소적으로 읊은 시다. 현재 프리랜서 카운슬러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애 시인은 현대인들이 ‘자기’라는 굴레 속에서 인정ㆍ애정 욕구를 추구하며 존재의 불안과 물질적ㆍ성적 욕망에 중독되어 가는 모습을 통찰하고, 시를 통해 영혼의 치유와 사랑, 기독교적 구원을 향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부제 -치유적 시 쓰기- 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황혼의 노래 --- 12p

산길을 내려돌며 해저문 하늘
조금 전 밟았던 산등성이 위로
붉게 물든 노을진 하늘
그림 한 장이 걸려있네

눈동자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황혼의 아름다움에
살갗에 고인 하루의 땀이 날아가고
고단한 삶의 시간을 닫을 때

가난한 이들도
슬픈 이들도
서로가 몸을 기대며
어두움의 이불을 덮고
근심을 잠시 잊을 듯
쉼을 얻는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면
아마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하늘
밑에서

가을 회상 --- 33p

숲길을 걸었네
솔바람 사이로

가을이 깊어가는
쓸쓸한 저녁

나무 끝 하늘에
뭉게구름 걸쳐있어

푸른 바다 바위섬인가
솔깃하여 나도 모르게

꿈 같은 추억으로
팔 내밀어 닿아 보려도

손끝에 저려오는 건
그리움뿐인 당신 얼굴

발길에 뒹구는
낙엽 우는 소리인가

귀 속에 맴도는 건
그리움뿐인 당신 목소리


위선이라는 이름짓기 --- 58p

겉으로는 세계평화, 속으로는 내전지원
겉으로는 동맹보호, 속으로는 전쟁이익
겉으로는 종교통합, 속으로는 기독교와해
겉으로는 인권보호, 속으로는 인구감축
겉으로는 환경보호, 속으로는 이권다툼
겉으로는 성평등, 속으로는 성도착
겉으로는 아동지원, 속으로는 소아성애
겉으로는 여성존중, 속으로는 성착취
겉으로는 기부선행, 속으로는 지배이용
겉으로는 소수자권리, 속으로는 지지세력화
겉으로는 유전자치료, 속으로는 백신연구
겉으로는 식량문제, 속으로는 유전자조작


당신이 있습니다 --- 105p

나무에 당신이 있습니다
새에 당신이 있습니다
대지에 당신이 있습니다
바다에 당신이 있습니다
하늘에 당신이 있습니다
내 안에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대지가 되고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고
그리고 내가 됩니다

미혹의 영이
당신의 손길, 당신의 숨결을
보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온갖 모습으로 방해하여도

당신은 저기
여전히 있습니다